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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변화에 대처하는 신앙인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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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성일 작성일15-08-19 02:46 조회2,6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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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서 11:32-12:3 
 
롬 11:32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롬 11:33) ○깊도다 하나님의 3)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또는 부요와 지혜와 지식이여
(롬 11: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롬 11: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롬 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1)영적 예배니라 합당한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요즘… 학교에서 고등학생들을 관찰한 적이 있다. 다들 옆에 사람과 이야기는 안하고 스마트 폰만 보고 있다. 어른들도….”혹시 나에게 연락이 오지 않을까?” 해서, 자꾸 전화기를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사람은 세상과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에 커다란 안도감을 느끼게 되고, 반대로 남들로부터 소외되었다는 느낌을 가질 때 커다란 불안함과 분노를 가지기도 한다. /물론 사람마다 개별적인 차이는 있기 마련이지만, 이러한 부분이 우리의 사고와 정서에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면, 스스로를 돌이켜 보아야 할 부분도 있다. /결국 우수한 통신매체를 주도적으로 잘 사용하고 있는가 아니면 그것에 잡혀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15년 전에, 와이파이가 널리 보급되기 이전에 어떤 여성이 크루즈 여행을 떠났다. 그런데 이 여자는 너무도 이메일이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인터넷이 너무 하고 싶은 상태에서 난동을 부리고 난리를 쳐서, 헬리콥터를 태워 육지로 보내서 인터넷을 하게 해주었다는 기사가 있다.
       나는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된 것에도 이 정도의 간절함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한다. 사실 자기 안에 하나님을 향한 강한 열정과 간절함이 다 말라 버렸다면, 교회는 다니고 있는 듯하나 이미 힘을 잃어 버린 성도가 된다.
 
 
/사실 오늘 주제는 한편에 내용을 다 담기가 어렵다. 요약하자면 “세상의 흐름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라”는 것인데, --솔직히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이미 세상이 주는 기준과 자신의 욕정이 만들어낸 인생계획서를 보면서 자기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기준이 또 있다. /그래서 이미 자기 욕정으로는 하고 싶은 방향을 다 정해 놓고서, 나름대로 기도 몇 번 하고서는 하나님의 뜻이라고도 한다. /세상의 기준에 맞추어 산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가장 무난해 보이고 안전해 보이지만, 세상의 흐름이 꼭 옳은 것으로 흐르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15년간 세계 절대 빈곤 인구가 반으로 줄었다. 물론 그 배경에는 중국의 급격한 경제성장이 이유로 설명되고 있다. 물론 모든 인류가 잘 사는 것은 인간의 꿈일 것이다. 그러나 알아야 할 것은, 어느 정도의 욕구가 충족되면 사람이 더 고상하고 품격 있고 신실한 상태로만 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19세기말 전기기술과 제품들이 급격히 개발되고, 각종 과학의 혁신들이 이루어지면서 사람들은 인간 본성에 대한 교만한 판단이 들었고, 그러다 보니 이런 잘난 인간을 통제하려는 성경의 가르침은 공격대상이 되었다. //진화론이 퍼지면서, 성서의 권위를 무너뜨리려 하고, 이제는 신이 아니라 인간이 신과 같이 위대하고 놀라운 도덕적인 존재들이 되어 지는 진화론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교회는 오히려 외부의 핍박과 도전이 있을 때, 더 발전하게 된다. 나태해지고 느슨해진 부분에 위기감이 들면서 하나님께 더 매달리기 때문이다. /성경을 해체하는 자유주의 신학과 수 많은 공격 속에서, 1907년 전세계적으로 대부흥 운동이 창궐한다. 한국 또한 이 시기에 교회가 성장하게 되었다. 공격을 받을수록 더 많은 젊은 선교사들이 세계로 뻗어나갔다. /그런데 진화론이 활성화되고 150년이 지나가도 아직도 과학적인 실험으로 제대로 증명해 낸 것이 없다. /어떤 바뀌어진 특성이 그대로 전달이 되는 것도 아님이 이미 예전에 멘델의 유전법칙을 통하여 알려졌다. /그리고 자연선택, 또는 적자생존의 진화론적 법칙은 오히려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쳐들어가서 잔인하게 그 나라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정당화 시키는 철학을 주었다. 즉 “나는 우수한 게르만이기에 진화론의 법칙에 의거하여 열등한 슬라브 민족을 죽이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순진한 청년들이 아주 무서운 살인마로 변해 버렸다. 독일은 소련으로 쳐들어가 열등하다고 생각하는 슬라브 사람들 2500만 명을 죽였고, 일본인은 자신들은 “황국신민” 곧 신의 백성이라는 우월감을 가지고 2000만 명의 중국인들을 경쟁하듯이 죽였다.
         즉 어떠한 부분에 대해서 나름 진보적이라고 가르치는 것이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도출해 내는 일들이 세상에는 빈번하다. /어떤 문제가 있어서 “그것만 해결하면 좋아지겠지” 라고 생각하다가, 하나가 해결되면 인간의 욕구가 또 다른 요구를 하게 되는 것이 예측 되지 못한 것이다. /세상의 흐름으로 자신의 주장의 근거를 삼는 것은 신앙인이 가져서는 안될 자세이다. /
 
 
좀더 현실적인 오늘날의 이야기를 해보자, 나는 많은 사람들의 철학이나 가치관이 영상매체를 통하여 형성되는 현실을 본다. 어떤 역사에 대한 영화를 보면서 사람들은 영화의 내용 전부를 실제로 받아 들인다. 그리고 그것을 자신의 철학의 근거로 삼는다. 대중매체의 가장 큰 가치는 올바른 선도가 아니라, 인기이다. /좀더 자극적이고 좀더 기발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것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영상매체를 보면서 자신의 인격과 사고의 기반으로 삼는 것이 온당하다고 생각하는가? /세상이 살만해지니, 이제는 가려졌던 성적인 이슈들이 사회적인 이슈로 변한다. 알다시피 동성애가 가장 큰 이슈로 떠오르는데, 이것을 지나치게 논쟁으로 만들다 보면, 대중들은 오히려 더 친숙해 지는 결과가 나온다. 사람은 자주 접하는 것들에 대해서 관용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오늘 다 다룰 수가 없어서 다음을 기약한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항상 인류를 어려움에 봉착시켰던 사상이나 흐름들은 다 정의나 공평 그리고 휴머니티의 기치를 들고 나왔던 것이다.
 
 
물론 당사자들의 어려움에는 다 사정이 있을 것이다. 나는 어린 시절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상처에 빠진 남자가 가해자를 죽인 기사도 최근에 보았고, 같은 경우를 당한 사람이, 자기가 성인이 되어서 자기가 당했던 짓을 어린 남자 아이에게 저지른 사람도 보았다. 필리핀의 경우 스페인의 지배를 받을 때, 남자들은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으니 여자들만 교육을 시켰다. 그래서 우리가 알다시피 여자 대통령도 먼저 나왔고 여자들이 똑똑하다. 그래서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섭섭해서 여자에 옷도 입히고 머리도 빗어 주다가 아이의 성 정체성이 혼란해 진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엄마가 아들을 그렇게 만들어 놓는 것에 대한 보고도 많이 있다. 자기가 이루지 못한 것에 대한 욕구를 자식을 통해서 이루기 위해서 지나치게 통제하다 보니, 아이는 엄마에 대한 갑갑함이 여자를 거부하는 의식으로 남아서 그 성적결정마저 뒤틀리게 되는 것이다. 알다시피 성생활이라는 것이 심리적인 영향을 많이 받게 되는데, 오히려 여권이 신장되고 가정에서 여성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이 문제가 더욱더 부상되고 있는 것에 대해서 우리는 생각해 보게 된다. 동성애는 결국은 극복해야 할 것이지, 성적 소수자에 대한 옹호가 좀더 세련되고 진보적인 방식으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따지자면, 자기는 두 명의 여자를 다 사랑하니 다 합법화 해달라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자기 개와 결혼하겠다는 여자도 있을 것이고, 옆집 12살짜리 어린 소녀를 정말로 사랑해서 결혼하고 싶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자기 여동생이랑 결혼하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러한 것들은 실례를 든 것이다./어떤 현상이 있다는 것과, 그것을 법적으로 보편화시켜서 사람들에게 아무런 문제 없다고 인식을 시키는 것은 차이가 있고, 분명히 사이드 이펙트(부작용)가 나타날 것이다.
 
 
/그럼에도 사회나 제도가 흘러가는 것을 보고, 그것이 신앙적이지 않다고 해서 너무 실망하거나 낙담할 필요는 없다. 나의 신앙을 키우는 것은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내적으로, 어느 교회의 지도자가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문제를 일으켰을 수도 있고, 또는 과장된 것들도 상당히 있다. 그러나…신앙은 누가 좋은 인상 주었다고 예수 잘 믿고, 누가 실수 했다고 떨어져 나가는 것이 아니다. 신앙의 기준은 하나님인데, 본인이 하나님 앞에 성실하고 정직하게 서 있냐 하는 것이 기준이 되어야지, 남 잘못한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거리가 멀어지는 것을 정당화 시키는 것은 아직도 어린 아이의 상태에 놓여 있음을 드러내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바울 시대는 알다시피 로마제국이 전 세계 영토의 1/4을 다스리던 시대였다. 어느 누구도 로마를 감히 건드리지 못하였다. 그렇게 안정이 찾아오니 사람들은 이제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 많은 검투사들이 상대편의 몸을 베고 자르고 피가 난무하는 잔인한 쇼를 즐긴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규모가 크고 잔인한 쇼를 요구하였다. 그래서 국가재정의 상당부분이 이 부분에 사용되었다. 성적인 타락은 말할 필요도 없어서, 불륜 정도가 아니라, 좀더 자극적인 것을 추구하면서 짐승과도 하고, 남자가 10살 정도의 어린 남자애들을 불러다가 자기의 욕구를 채우는 등…자기의 욕구를 탐닉하는 가운데, 안정의 시대가 타락의 시대가 되었다.
 
 
 
       본문의 편지는 로마에 살고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보내어졌다. 그들이 보고 듣고, 영향을 받는 것들이 이러한 것들인데, 여기서 신앙적인 분별력을 가질 것이 요구 되어진 것이다. 사람들이 자신의 욕구와 자극을 따라가는 세상에서 바울은 성도들이 자신의 몸을 그러한 것이 아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사로 드리라고 한다. 이것은 성도가 드려야 할 영적인 예배라고 한다. /그러니 예배라는 것은 예배시간에 와서 말씀 듣고 찬양하고 가는 것이 다가 아니라, 우리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 앞에 바쳐지는 모든 순간 순간이 예배로서 의미를 부여 받게 되는 것이다. /초대 교회 당시 기독교인들을 비하하고 미워하는 온갖 소문과 험담이 넘쳐났다. 삶의 방식이 다른 사람들이 기독교인들을 오해한다는 것은 놀랍지도 않은 것이다. 이렇게 신앙생활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바울은 너희가 그 가운에 살지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라고 한다. 2절을 들어보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라” 그렇다! 세상의 흐름에 우리는 자꾸 물들기 때문에 마음을 늘 씻어내어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교인들도 실수하고 서로에게 실망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그러한 부족함에도 하나님을 그 기준으로 삼고, 자기 안의 마음의 시험을 이기는 자들을 하나님은 귀하게 사용하신다. 시대가 악하다고 불평만 하기 보다는 이러한 시대 속에서 나는 신앙을 온전히 지키며 마음의 싸움을 늘 이기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것이 훨씬 더 지혜롭다. 세상을 변화시키겠다고 자기의 정의를 가지고 나선 수 많은 청년들이 자기들도 죽고 수 천 만 명의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였다. 지난 20세기에 전쟁과 혁명으로 죽은 자가 그 전까지 전쟁으로 죽은 사람보다 많다고 한다. /물론 타락하거나 잘못된 흐름도 항상 좋은 포장을 하고 논리를 가지고 있기에, 우리도 헷갈리게 된다.
 
 
     /물론 세상에 잘못된 부분이나 모순된 부분도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인간의 정의가 얼마나 편협하고 자기 중심적인 것인지는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본문은 분별력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나치게 엉뚱한 것에 마음을 잡혀있지 말아야 한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다 세상과 남의 신앙에 대해서 판단하고 자기 주관을 가지고 있지만, 좀 교회역사를 알게 된다면, 오늘날 우리가 충격적으로 받아 들이는 사태들이 놀랄만한 것도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항상 교회를 위협하고 흔드는 사상이나 세상의 사조는 교회 내외적으로 신앙인들을 위협하였다. 그 모양과 내용만 바꿀 뿐이지, 성서적인 가르침을 위배하고 그 권위에 도전하는 일들은 나타나졌던 것이고, 오히려 이러한 것들이 교회를 더 깨어있게 하고 신앙을 지키게 하였다.
 
   중세시대에 카톨릭이 세상 권력과 결부되면서 저질렀던 죄악은 얼굴이 들기어려울 정도이다. 단지 도덕적인 죄가 아니라, 신앙적인 가르침도 왜곡한 것이 예레미야 시대의 거짓 선자들 같았던 것이다. 이것은 교회가 세상에서 힘을 얻는 위치가 된다고 반드시 더 신앙적이고 성서적이라고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즉 교회가 사회에서 어떤 위치에 있든지, 또는 세상의 흐름이 어떻게 변하든지…..수 많은 이유나 핑계가 있겠지만, 결국 우리의 시금석은 “이러이러한 것들을 하나님이 기뻐하시겠느냐?”고 묻는 것에 있다. /아무리 논리가 그럴듯해도, 성경을 통해서 본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것이라면 하지 않는 것이 신앙이다. 인간이 자신의 지혜와 정의를 믿고 오히려 범죄를 저지른 것이 얼마나 많이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깊고 풍성하심을 믿고 신뢰해야 한다. 11:33절을 들어보자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우리가 아무리 머리를 굴리고 세상을 읽으려고 해도, 우리의 근본인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면 무의미한 것이다. 36절은 말한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갈 것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 지어다 아멘” /그렇다, 우리는 그때 그때 변하는 것에 영혼이 팔린 자가 아니라, 우리가 영원토록 가야 할 곳을 사모하고, 그 주인 되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 속에서 주관하시도록 자기를 내어 드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결국 세상의 흐름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신 것이 성도의 온전한 삶이요, 하나님의 뜻이 우리 안에 담겨져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이러한 오염된 세상을 단지 쓸어버리시는 것이 최종의 목적이 아니라, 오히려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의 긍휼을 베풀어 구원을 이루시기를 기다리고 계신 분이시다. /우리가 세상의 진정한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알고, 구원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읽고 동참해 나가는 것이 진정한 세상의 변화인 것이다. /우리가 내세우는 자기 합리화의 수 많은 이유는 “내 친구들은 이러는데, 요새 사람들은 이러는데------“ 이러한 대답은 틴에이저 때나 하면 족하다. 우리가 본 받아야 할 대상은 세상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우리에게 나타나서 삶으로서 본을 보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하셨다. 오늘날 나의 마음 속에 예수를 따라가고자 하는 마음이 자신의 안에서 힘을 얻고 있다면, 그곳이 바로 산 제사가 드려지는 거룩한 곳이다. 세상과 사람을 탓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산 제사가 여러분의 가슴 속에서 바쳐지기를 축복한다.        
        바라기는 세대의 흐름에 넘어지고 미혹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고 기쁘신 뜻을 분별하고 따라가는 지혜로운 성도가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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