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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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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성일 작성일18-03-30 04:02 조회37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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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훈련 교재 "Jump"(박성일 목사 저) 에서 발췌했음
1. 영성생활
* 내 맘 돌아보기
1)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영적인 훈련은 무엇입니까?
2) 전에 도전한 영성 훈련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3) 더욱 성장하는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 “지금” 결단 하시겠습니까?

(죄를 다스리기)
영성은 삶 속에서 하나님을 꾸준히 의식하며 추구하는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수 많은 시간을 생각하고 또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생각의 주체가 하나님이 되도록 지향해야 합니다. 똑 같은 것을 보면서도 자신 안에 생각하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서 전혀 다른 해석이 생기게 되고, 이러한 차이는 결국은 신앙의 성장에도 직접적으로 연동 되어집니다. 바울은 로마서 7:21-24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아가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바울은 자신의 실체를 솔직히 드러내지만, 이러한 현실이 그를 절망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러한 자신의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께 마음을 향하는 것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적고 있습니다 (25). 로마서 8:6절을 보면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고 하는데, 우리가 궁극적으로는 구원을 향해 나아가면서, 하나님의 영을 채운 사람들이 되면,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 평안 가운데, 생기 있는 삶을 살아가는 유익을 얻게 됩니다.
영성 생활을 하는 사람은 순간순간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기 위해서 다가오는 죄를 오히려 지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아벨을 죽인 가인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세기4:7).” 영성 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것들에게는 공급을 해주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을 향해서는 자신의 주권을 드린다는 고백을 하고, 이것을 실천하는 마음의 힘이 있어야 합니다. 영성 생활은 자신의 내면에서 얻어진 확신과 자신감이 있어야지만 겉으로도 드러나며 다른 사람과 관계하는 일에서도 건강한 것들이 열매로 나타나게 됩니다.

(습관적인 영성 생활)
영성 생활은 훈련의 연속이자 실전입니다. 그리고 훈련을 평상시에 잘해 놓은 사람이, 갑작스러운 실전 상황에서도 잘 대처하게 됩니다. 자신의 영성의 크기와 세기만큼 대처할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런 영성의 훈련에서 중요한 것은 “반복 - 숙달”입니다. 우리는 같은 일을 계속 하면 금방 싫증 내고 다른 것에 눈을 돌리려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의 충족이나, 뭔가 나의 욕구를 만족시켜줄 것을 찾는 수준으로 영성 생활을 하려 하면, 단시간 동안에는 잘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결국은 실망스러운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영성 생활을 한다는 것은 습관적으로 해야 합니다. “습관적”이라고 한다면, 매너리즘에 빠진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지속적으로 습관적인 영성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싸워 나가야 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은혜를 지키는 것은 가만히 있다고 지켜지는 것이 아닙니다. 대개의 경우에, 다른 일에 정신이 팔리거나, 안일한 생각으로 가만히 멈추어 있을 때, 시험이 찾아 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가시 밭이나, 돌 밭 같은 마음의 소유자가 아니라, 옥토가 되고 싶어하지만,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데 옥토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적극적인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사모하며 평생을 꾸준하게 습관적으로 영성 생활을 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분명히, 영성 생활은 무언가 새로운 것만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흔히 신앙생활을 배우면서 주변 사람들을 복사하게 되지만, 자기 안에 단단한 기초가 없다면 그것은 참된 것이 아닙니다. 기초가 튼튼해야 격변과 충동의 상황에서도
잘 견뎌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기초 쌓기는 당연히 적지 않은 시간을 들여야 합니다.
 

(영성생활과 예배의 관계)
영성 생활의 기초 중에서 가장 주재료가 되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의 꾸준한 출석입니다. 이것 없이 영성이 성장하기를 기대하지 않아야 합니다. 영적인 성장을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주일에만 한번 예배 드리는 “썬데이 크리스천”의 수준은 벗어나야 합니다. 어떤 분은 예배를 멀리 하게 하는 수 많은 이유를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합리화가 하나님 앞에서도 인정 받을 것이라고 오판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꾸준히 예배에 참석 한다는 것은, 삶의 우선순위에서 이것이 가장 우위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시간을 얼마만큼 우선 순위에 두느냐 하는 것이 우리의 영적인 수준의 실체를 드러냅니다. 은혜로운 영성 생활을 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얼마나 아름다운 은혜로운 말을 하느냐 하는 것 가운에 나타나기 보다는, 신앙과 갈등하는 상황에서 다른 것을 버리고 신앙적인 것을 택하느냐 하는 선택의 순간을 통하여 드러나게 됩니다. 꾸준히 영성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포기해야 할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로마서 15:3을 보면,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을 위해서, 일신의 안락을 넘어서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다니엘서 6:10절을 보면, 다니엘은 자신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꾸준하게 기도하는 것이 스스로를 위험에 빠뜨리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더라”고 합니다. 때로는 습관적인 영성 훈련이 건조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자주 나아가려는 사람이 은혜의 기회에 더 많이 접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않겠습니까? 성령님이 언제 역사 하실는지, 그 의지는 성령님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자주 모습을 드러내면, 성령님이 생각지도 않은 시간에 나에게 힘을 주시기 위해서 임재 하십니다. 영성 생활의 기본이 되는 예배가 삶 속의 스케줄에 있어서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단순화, 고독과 침묵)
기독교 역사 속에는 하나님과 만나는 것에 최고의 가치를 두면서 살았던 영성의 거인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중요하게 생각한 영성 훈련의 방법은 “단순, 고독, 침묵”이었습니다. 영성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생각이 복잡해지는 것을 벗어나게 됩니다. 지나치게 많은 생각은 걱정을 불러들이고, 자신 안에 걱정과 불안이 가득하게 되면, 집중적으로 영성 생활을 하기 어렵습니다. 영성 생활을 하면서 자기가 지금까지 의지해 오던 것들, 잡고서 놓지 못했던 것들을 벗어나는 마음의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이 단순해지고 여기에 평화가 옵니다. 자기 마음에 평화가 없는 사람은 타인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은 외로워서 죄를 짓습니다. 외로움이 고통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냉정하게 말해서, 우리 모두는 자신만의 외로움을 직면해야 합니다. 이러한 외로움이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한가지 유익은 이러한 외로움 속에서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서의 수 많은 신앙의 인물들도 그러한 시간을 통하여 성장하고 단련되었습니다. 침묵이라는 것은 아예 말을 하지 않는 것이라기 보다는 은혜가 아니라면 절제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수 많은 뉴스와 정보를 통하여 부정적인 소식과 불안을 조성하는 이야기들, 나의 자극을 즐겁게 하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기곤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런 것에 반응해서 자꾸 말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들려지기도 합니다. 말을 했는데, 스스로를 더럽히는 것들이라면 이런 말들은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야고보서 3:8-10절을 보겠습니다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 도다,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결단과 환경 정리)
실제적으로, 온전한 영성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결단”과 “환경정리”가 필요합니다. 올 한 해에 성경을 통독 하겠다든지, 성경을 쓰겠다든지, 가족이나 주변의 누구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전도하겠다든지, 새벽기도에 참여하겠다든지, 어떤 급박한 상황에 기인한 것이 아닌데도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할 방향을 잡는 것이 좋습니다. 영성 생활을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열정이 정말 중요한데, 동시에 중요한 것이 분별력 입니다. 우리는 유혹, 또는 미혹을 분별해야 하는데, 유혹은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잘못된것임을 알면서도 하는 것이고, 미혹은 자기가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면서 잘못을 저지르는 것입니다.
환경정리에는 물론 말씀을 자기 책상이나 냉장고, 싱크대에 붙이거나, 늘 찬양을 틀고서 운전하는 것도 있지만, 나에게 신앙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을 정리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잠언 22:24-25절을 보면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그의 행위를 본받아 네 영혼을 올무에 빠뜨릴까 두려움 이니라”고 합니다. 늘 불만만 쏟아내고, 만나고 나면 내 영성이 바닥나게 하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는 것이 좋습니다. 신앙적으로 아닌 것은 아닌 것입니다. 영성 생활의 기본은 구별됨입니다. 전과 아무런 구별 없이 영성이 자라기를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로마서 16장을 보면, 충성된 성도들의 명단이 은혜롭게 기록되어 있는데, 반대로 자꾸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배운 교훈을 거슬러 분쟁을 일으키거나 거치게 하는 자들을 살피고 그들에게서 떠나라, 이 같은 자들은 우리 주 그리스도를 섬기지 아니하고 다만 자기들의 배만 섬기나니, 교활한 말과 아첨하는 말로 순진한 자들의 마음을 미혹하느니라.” 사람이 원하는 탐욕에는 물질을 향한 것도 있지만, 자기가 주변 사람들에게 주도권을 잡고서 자기 맘대로 하고자 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위해서 아첨하는 말로 자기의 신앙을 잠식하는 사람들을 옆에 두고 있다면, 이것은 자기의 신앙을 아주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런 일을 주도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상처가 많거나 열등감이 많은 사람들이고, 그들이 하는 말도 신앙의 포장지를 덮고 있기에, 정말 그럴듯해 보입니다. 그러나 미혹은 모든 말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90%은 맞는 말을 하고, 나머지 10%를 가지고 장난을 치며 마음을 흔드는 것입니다. 이것을 분별하지 못해서 영성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들이 적지 않습니다. 자신의 영성 생활을 위해서 이러한 부분에는 선을 긋거나, 아니면 용기를 내어서 상대에게 정확하게 말해 주어야 합니다. 미혹의 영은 잘못된 일을 주도하는 사람도 당시에는 기만하다가, 언젠가 떠나버리면서 그 사람이 스스로의 잘못을 보게 만드니, 이용당한 그 사람은 그 자괴감에 또한 무너지게 됩니다. 이러한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용서와 자비입니다. 거리를 둘 때를 알고, 품을 때를 아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마저도 이끄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나는 올해 성경을 통독하겠다, 나는 올해 신앙적으로 전에 하지 못하던 어떠한 것들을 하겠다는 것을 가급적 주위 사람들에게 고지하는 것도 좋습니다. 우리에게는 태만함과 의지박약으로 넘어지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신앙적으로 도움이 되는 신앙의 동지들, 그리고 목회자에게 기도요청을 하는 것은 지혜로운 방법입니다. 주변에 기도를 많이 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그 사람의 영적인 자산입니다.

(영적 성장)
일상생활에서 영성 훈련의 기본은 꾸준한 기도와 말씀묵상입니다. 이것이 익숙해지면, 우리는 삶에서 인지하지 못했던, 작은 일, 작은 사람에게서도 하나님의 간섭과 역사하심이 나타나심을 느끼기 시작하게 될 것이고, 같은 말씀을 보아도 전에 보지 못하던 것이 보이게 되고, 같은 설교를 들어도 전에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리게 됩니다. 사람은 자기 수준만큼 보게 되고 듣게 됩니다. 어차피 사람이 설교를 들으면서 듣게 되는 것은 자기가 해석한 기억입니다. 영성 생활은 죄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의 태도를 견지해야 하며, 자신을 충동하는 것에 대해서 견고하게 대처함으로 그 성장이 드러나지게 됩니다. 과거에 남이 자기보다 좋은 일을 겪었을 때, 시기심 때문에 마음의 평정심을 잃던 수준에서, 이제는 축복해 줄 수 있다면, 당신은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통하여 성장한 것입니다. 자신의 영적인 성장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고 축복하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가 영적으로 병들게 되면, 교회에서 성실하게 일하거나 칭찬 받는 사람들에 대해서 언짢은 마음이 생기게 됩니다. “시기”는 인간이 살인을 저지른 첫 번 째 이유였습니다. 하나님을 배우고 닮아가면서, 우리의 신앙인격도 성숙해야 합니다. 그런데 오랜 기간 쌓아 온 좋은 이미지를 순간의 실수로 다 날려 버릴 수도 있기에, 자기에게 정욕이나 혈기로 인한 약점이 있다면, 이것을 위해서 더 말씀을 보고, 기도해야 합니다. 사람의 기본적인 성정이 바뀌기는 쉽지 않지만, 하나님은 살아 계시기에, 오늘날도 놀라운 역사를 우리 마음 안에서부터 하실 수 있습니다.
 

(거룩한 목표)
한번 사는 인생인데, 세상의 욕심이 정해준 목표에만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더 거룩하고 지고한 영성의 목표를 품고 달려나가는 성도는, 소망의 힘을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줍니다. 어떤 사람은 자식을 성공시키는 것을 지고의 선으로 여기지만, 이러한 욕망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갈등의 원인인 것을 인정할 것입니다. 숲 속의 짐승들도 자기 새끼는 지극정성으로 키웁니다. 우리는 세상이 규정한 것 이상의 목표와 지향점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살면서 자신의 마음 속의 전쟁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이기고 점령하고 있어야지, 다른 것들에 의해서 놀아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느 순간 성장했다고 생각할 때, 교만의 영은 우리 귀에 속삭이며 우리를 변질되게 하려고 합니다. 삶에 어려움이 올 때에도 위기이지만, 자기가 판단자가 되려고 하는 교만의 시간 또한 신앙의 위기입니다. 우리는 심판자는 하나님뿐이심을 인정하고, 늘 자신의 영을 씻으며 그 안에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들을 씻어내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기분 나쁜 일을 당하면 감정이 상하는 것은 모두에게 동일한 현상입니다. 그러나 영성의 축적이 있는 사람은 이것을 금방 벗어날 수 있습니다. 자신의 영성의 창고가 빈곤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이 있듯이 영성의 풍요함을 추구하며 채워 나가야 합니다. 많은 경우에 더 행복하고 기쁘게 살 수 있으면서도 필요 이상의 욕심을 부리면서 슬퍼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많이 있습니다. 로마서 12:3절을 보면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라고 합니다.
은혜가 되지 않는 생각은 씻어내고, 반대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일에는 소망을 품고 힘을 내어서 영성 생활에 활력을 얻은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훈련이라는 것은 꾸준히 하는 것이기에, 삶 속에 영적인 훈련을 생활의 일부로 만들어야 하며, 구차한 변명을 넘어서는 사람이 되야 할 것입니다. 제자로 사는 것에는 은퇴가 없습니다. 우리의 생이 다하는 날까지 꾸준하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훈련을 잘 감당해 나가기를 소망하며, 또 주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을 이루어 내는 충성스러운 주님의 제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 다시 생각하기
1) 내가 삶 속에 “선택”을 하는 것에는 신앙적인 것들이 우선 합니까?
2) 습관적인 영성 생활을 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이야기 해 봅시다.
3) 단순함, 고독, 침묵의 원리를 적용해서 자신의 영적인 훈련에 대해서 말해 봅시다.

* 기도하기
하나님, 부족한 제 머리로 세상을 사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라, 나의 삶 속에서 꾸준히 하나님의 가르침을 추구하며 살게 해 주세요. 주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분별하게 하여 주시옵고, 나에게 주어진 영성의 훈련을 잘 감당해서, 정금같이 아름다운 존재로 주님 앞에 서게 해 주시옵소서. 저에게 결단할 힘을 내려 주시옵고, 저 또한 이 시간 더 나은 주님의 자녀가 되기로 결단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만 의지하고 생의 마지막까지 가는 자가 되려고 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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