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생활 > 목회칼럼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slide 배너

회원로그인




인터넷성경


영어권목회
목회칼럼

교회생활

페이지 정보

작성자 박성일 작성일18-03-30 04:27 조회317회 댓글0건

본문

제자훈련 교재 "Jump"(박성일 목사 저)에서 발췌
4. 교회생활
* 내 맘 돌아보기
1) 본인이 교회에 기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2) 교회의 일원으로서 현재 도움이 되고 있으십니까?
3)당신의 목회자와의 관계, 그리고 다른 성도들과의 관계는 어떠하십니까?
 
(교회란? )
교회라는 단어가 사람들의 모임인 “에클레시아”에서 왔다는 것은 흔히 듣는 말이지만, 이러한 사람들의 모임이 반드시 내가 좋아하거나 마음에 드는 사람들만의 모임은 아닙니다. 서로 다른 삶의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일을 하는데 아무런 갈등이나 충돌이 없다면 그것이 이상할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 진 유기체적 공동체입니다. 동시에 우리가 현실의 신앙생활을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곳이기에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역사 하시는 곳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죄인 된 무리가 모여 죄 사함을 받고, 함께 부딪쳐가며 그 가운데서 성장해가는 현실적인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교회를 통해서 우리는 영적인 풍성한 에너지와 은혜를 받고 세상을 이길 힘을 공급받습니다. 실제로, 교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은혜의 충만한 자리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죄인 된 무리가 모이는 곳이기에 갈등과 불편함 그리고 어려움도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 지나치게 교회를 향해서 유토피아 같은 이상적인 환상을 품는 경우가 있다면, 그 사람은 실망하여 교회를 떠나기 쉽습니다. 교회는 정신적으로 건강한 사람뿐만 아니라, 주님을 만나서 치료를 받고 힘을 얻고 회복되어야 하는 약한 자, 병든 자, 상처받은 자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예수님은 말씀 하셨습니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 자라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마태복음 9:12).”
 
(제자 교인의 성숙한 자세)
사람은 본질상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맞고 다루기 편하고 코드가 맞는 사람들과만 어울리고 싶어집니다. 나와 의견이 다르거나 코드가 맞지 않는 사람과는 함께 하고 싶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와 이해 관계가 다른 사람을 계속 상대한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자신의 모습이 새가족 혹은 사회성이 부족한 성도들에게는 상처가 되고 텃새를 부리는 것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새로운 물이 흘러오지 않는 교회는 썩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편한 것만 추구하고, 자기 좋은 사람만 좋아하는 것을 벗어나서, 적극적인 마음으로 교회 안의 연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또한 새로 교회에 등록한 새신자가 교회에 잘 정착하도록 신경 써 주고 돌봐주는 것이, 구경꾼 교인이 아니라 제자교인이 해야 할 일입니다.
또한, 교회는 예배와 선교의 모임이면서도 동시에 사람들의 모임이기에 여기에는 여러가지 의논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더더군다나 대부분의 회의들이 주간 단위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누군가가 챙기지 않으면 연결이 잘 되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고, 서로의 요구치가 다르다 보니까, 회의 중에 마음이 상하는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물론 교회의 모든 행정은 투명해야 하며, 설명 가능해야 합니다. 특히 성도들이 예민한 것은 인사와 예산의 문제입니다. 사실, 누구나가 자기 입장과 자기 유익을 위해서 주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를 위한 회의에서는 이런 기질을 낮추고 덕을 세우는 일에 더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혹시 거절을 경험하였다면, 이것을 바로 극복할 만한 회복력을 얻도록 해야 합니다. 아직 때가 아니든지, 좀더 준비 되어야 할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너무 조급하게 자신의 욕심이나 경험으로만 주장하는 자세를 내세우는 것을 벗어나야 하고, 이제는 자신이 그 일을 위해서 수고한 것을 가지고 와서, 상대의 마음을 얻게 하는 권위를 가져야 합니다. 교회의 주인은 주님이십니다. 당연히 과정과 절차가 중요시 되어야 하지만, 영적인 권위나 질서도 존중되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5:3-6절을 봅시다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 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하나님의 집을 위해 수고하는 자)
오늘날, 교회가 어려움을 겪는 것은 비판자나 분석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가려는 사람들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단지 나의 귀를 즐겁게 해주고, 나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곳이 아니라, 주님을 위한 나의 헌신과 희생이 바쳐지는 곳입니다. 제자 된 자는 교회를 위해서 내가 무엇을 수고할지를 고민해야 하고, 혹시 어려운 일이 닥치면 그 자리를 지키며 교회를 보호하고 어려운 일을 감당해 내는 것으로 진위를 드러냅니다. 골로새서 1:24절에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28-29절을 보면, 우리가 교회 안에서 성도들을 보면서 지향해야 할 것을 알게 해 줍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집을 위해서 수고한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십니다. 스룹바벨 총독과 여호수아 제사장은 바벨론 포로기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성전을 세운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 위해서 수고한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봅시다. 학개 2:23절;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세우고 너를 인장으로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스가랴 3장을 처음부터 보면 여호수아 제사장은 하나님과 천사 그리고 사탄 앞에 섰습니다. 사탄은 여호수아의 흠을 잡으려고 하지만 하나님이 그를 보호하시고 권위를 세워 주십니다. 스가랴 4장은 이 두 사람을 등잔을 빛나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두 감람나무로 표현합니다. 이제 성전이 지어지고 세상을 비추어야 하는데, 그것을 태울 올리브 기름이 성전을 위해서 수고하는 두 사람에게서 나온 다는 것입니다. 주를 위해서 수고하는 사람들은 단지 자기의 계산이나 판단으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힘을 얻어서 하는 것이기에, 결국 하나님을 세우는 자가 됩니다. 스가랴 4:6절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 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

(분별력)
교회는 사람이 모인 곳이고, 그 안 에서도 환경과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이기 쉽습니다. 그러나 교회 내에서 당을 짓거나 분파를 만드는 것은,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상당히 주님이 경계하시는 죄입니다. 사람이 개인적으로 불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만을 쏟아내며 사람들을 규합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칼로 찌르는 것입니다. 참된 제자는 이것을 분별하고, 교회의 안정과 질서를 위해서 몸을 던져야 합니다. 교회에는 참된 신앙을 가진 사람도 있지만, 아직까지 그러한 경지에 이르지
못했거나 미숙하고 어린아이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도 있으며, 악한 영에 사로 잡힌 자도 동시에 존재합니다. 하나로 모으시는 성령에 대적하여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들에 대해서 유다서 1:19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 교회에 분열을 가져 오는 것을 피해야 하고, 혹시 자신 안에 합리적인 불만이 있더라도 그것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공적인 발언을 통하여 소통이 되어야지,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사람들을 충동하는 것은 그 열매가 선할 수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5:17절을 보면, 성령을 거스르는 행위로 “당 짓는 것”을 언급합니다. 당을 짓고 수군수군 거리는 모습은 제자의 모습이 아니라 영적인 힘을 잃어 버린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로마서 1:29-30절을 보면,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난 자들을 언급하는데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근수근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라고 합니다. 이러한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32). 고린도 전서는 교회에 당면한 여러가지 문제들에 대한 답변을 주고 있는 형태인데, 처음으로 다룬 것이 교회 내에 당이 지어진 부분이었습니다 (1:11-16). 교회는 나의 세력을 규합하거나 사람들을 모아서 선동하는 곳이 아닙니다. 혹시 그러한 모임이 있다면 힘을 보태주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날 이단들이 교회에 침투해서 성도들을 미혹하는데, 자기가 자꾸 설득 당하고 있다면, 이유는 간단합니다. 쉽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것 저것, 좋은 것 있다고 사방을 쫓아 다니는 사람치고 교회에서 덕이 되는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은혜는 내 기대와 감정을 만족시키는 대상을 찾아 다니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의 단단한 인격적 관계 속에서 흘러 나오게 됩니다.
에스겔 47장을 처음부터 보면 성전에서 생명수가 흘러나는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성령에 감동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같은 말씀을 들어도 전혀 다른 반응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은 사람 중에는 인생을 바꾼 신앙의 결단을 한 사람도 있지만, 불편해 하면서 예수님을 제거 해야겠다고 생각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교회의 기본적인 모임이나 예배도 참석하지 않으면서도 자기는 갈급 하다고 하며 엉뚱한 곳을 찾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이러한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 주는 것은 신앙적이지 않습니다. 이러한 분별의 가장 큰 책임은 목회자에게 있기 때문에, 항상 물어보고 점검 받는 것은 제자 된 사람의 기본적인 태도 입니다. 혹시 교회에 필요 없는 논쟁을 일으키며 문제를 삼는 사람들에 대해서 디모데 후서 2:14절 이하를 참고하면, 그들과 말을 섞어서 논쟁하기 보다는, 교회의 권위로 강하게 말해야 하며, 성도들을 보호하는 목회의 행동에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같은 장 23절을 읽겠습니다 “어리석고 무식한 변론을 버리라 이에서 다툼이 나는 줄 앎이라”
교회 내에서 죄를 범하고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에는, 사실 상대하기 싫은 것이 사람 마음입니다. 그러나 돌이킬 것에 대한 권면의 수고를 하는 것이 교회가 해야 할 일입니다. 개인적으로 권고하고, 안 들으면 한 두 사람을 더 데려가서 권고하고, 마지막으로 교회에 말하고, 목회자와 대동하여서 갔는데도 듣지 않으면 그때 선을 긋게 됩니다 (마태복음 18:15-17절 참조).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은 악한 사람이라도 돌이키는 것이기에, 마음에 품고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가 있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에스겔서 18:23절을
봅시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목회자와 다른 성도와의 관계)
교회생활을 하다 보면, 크게 목회자와의 관계, 그리고 성도간의 관계를 생각하게 되는데, 먼저 목회자에게 기대해야 하는 것은, 성실한 말씀준비와 성도를 위한 기도입니다. 교회의 일원으로서 제자들은 목회자를 도와서 목회의 부수적인 일들을 감당해 내야 합니다. 그러면서 전달된 말씀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에 최우선의 집중을 해야 합니다. 말라기 2:7절을 봅시다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거늘.” 물론 예민하게 받아 들이다 보면, 맘에 들지 않거나 상처 받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상대가 의도하지 않았어도 이런 일은 벌어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일로, 말씀 듣는 것이 막힌다면, 결국은 자신만 손해입니다. 성경은 목회자와 성도의 좋은 교제를 가르칩니다. 바울의 전도 팀에게 힘을 실어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바울 일행은 이렇게 전합니다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데살로니가 후서2:13-14). 데살로니가 전서 2:13절을 보면,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복음을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들였고, 이것이 전도 팀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교회는 서로 힘을 실어 주는 흐름이 있어야 살아 있게 됩니다.
성경에서, 성도가 죄를 지으면 그는 자신의 죄를 대신해서 제물인 동물을 죽이고 각을 떴고, 제사장은 이것을 태우며 하나님의 죄 사함을 간구하였습니다. 레위기 6:7절을 들어 봅시다 “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는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받으리라.” 특히 자신의 첫 수입이나 소득을 하나님께로 가지고 와서 목회자의 축복을 얻는 것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너희의 곡물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흔들되” (레위기 23:10-11). 이렇게 자신이 하나님께 바치는 것에 목회자의 축복이 더해지도록 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목회자를 향해 감정이 상한 일이 있을 경우에, 물론 목회자가 먼저 품어주는 것이 가장 좋은 일이고, 성도는 거기에 맞추어 마음을 열고 목회자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불편한 감정을 빨리 푸는 것이 제자의 능력입니다. 이것을 경험해야지, 앞으로도 성숙한 관계를 만들어 갈 수 있고 자기 마음에도 평강이 찾아옵니다.

(교회를 판단하실 분)
성도 간에는 사회적 지위나 재산 관계로 차별하거나 선을 그어서는 안됩니다. 교회는 사회의 기준이나 질서로 운영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존중 받아야 할 사람은
열심히 기도하고 봉사하는 사람이지, 어떤 사람이 세상에서 인정 받는 다고 해서 반드시 교회에서 그 기준을 따를 필요는 없습니다. 야고보서 2장을 처음부터 보면, 교회내의 차별에 대해서 말하는데 4절을 보면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 사람을, 교회를 판단하실 분은 주님 밖에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3장은 예수님이 교회를 평가하는 내용을 담고 계십니다. 이들이 지적 받은 것은 거짓 사도를 받아 들인 것, 처음 사랑을 버린 것, 이단에 빠진 것, 미혹된 것, 죽어 버린 신앙, 그리고 미지근한 신앙이었습니다. 3:8절을 보면 예수님은 빌라델비아 교회를 칭찬하시며 “볼지어다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고 하십니다. 에베소 교회의 경우에는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2:2-3)”고 하십니다. 칭찬 받는 교회는 바른 분별력과 열심이 있는 교회입니다. 제자 된 사람들은, 미혹하는 것에는 단호해야 하고, 교회가 태만해 지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하고 앞장서서 열심을 나타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미혹하는 것은 그럴 듯 하게 들리기 때문에, 그 대상의 열매를 보고 분별해야 합니다.

(순종과 사랑의 은사, 성령의 능력)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골로새서 1:18). 각 사람은 다른 은사와 능력이 있습니다. 자신의 은사를 교회를 위해서 사용해야 하지만, 가장 큰 은사는 불편한 것도 감당하는 순종과 사랑입니다. 이것은 자기의 주장이나 유익을 넘어서 교회의 지체된 성도를 서로 돌보게 합니다. 고린도 전서 12:24-27절을 봅시다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 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교회 안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과 입장을 가진 사람들을 보면서 불편한 마음을 가질 것입니다. 상대편의 과거를 알고 있으면 그 사람을 볼 때, 그 사람의 과거를 함께 보게 됩니다.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베드로는 사람들 앞에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사도행전 2:21).”고 하였습니다. 베드로의 설교를 들은 예루살렘 사람이 3천명이나 세례를 받고 사도의 가르침을 받으며 서로 교제하고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썼으며 심지어는 자기 재산과 물건을 팔아 서로 같이 사용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미하고,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습니다 (사도행전 2:44-47). 이날 세례 받은 3천명 중에는 다 훌륭하고 자격 있는 사람만 있었겠습니까? 그 중에 부족하고, 업신여김을 받던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러한 담장을 헌 것이 바로 성령의 능력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사람 간의 갈등이나 실망이 있을수록 나의 판단과 감정을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성령의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제자의 길을 걷는 사람은, 항상 이러한 기준과 질서와 사랑을 가지고 교회에 유익을 끼쳐야 합니다. 그리고 머리이신 예수님의 뜻을 따르며, 기쁘시게 해드리는 자가 되기 위해서 수고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들에 대해서 평가하신 예수님은 그 안에서 어려운 싸움을 이기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요한계시록 2:26-29).
 
*다시 생각하기
1) 교회 내에서 분별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 교회를 위해서 내가 어려움도 감당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47
3)주님이 교회의 주권자가 되신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4)목회자와, 다른 성도와의 관계에서 내가 더 개선해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
* 기도
하나님, 교회의 주인이 되신 주님께 겸손히 주권을 드립니다. 내 생각과 마음이 아니라 교회의 머리가 되신 예수님을 늘 따르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 어려움도 감당하고, 열심을 가지고 주의 일을 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교회를 주시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자리가 있음에 더욱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추천 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교회명:올바니(알바니)사랑의 교회 Albany Sarang Fellowship Korean Methodist Church(New York) 전화번호 : 518-271-1492, 518-813-5314(English Ministry)
휴대폰 : 518-505-8646(한국어권) 주소 : 410 23rd St, Watervliet NY 12189 E-mail : reophard@hanmail.net
회사소개 개인정보취급방침 서비스이용약관 Copyright © 2009~ 올바니 사랑의 교회. All rights reserved.
상단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