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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계에 흐르는 저주...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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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성일 작성일16-11-14 10:44 조회1,17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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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에 대한 답변을 하려다 온라인에서 저와 코드가 같은 글을 분별하여 올립니다.
 
아래 내용을 보시고,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더불어, 최근에 업로드한 설교 "어려움을 보는 태도에 대해서"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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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죄가 유전된다는 가계저주론은 성경적인가?

 

조상의 죄가 유전된다는 가계저주론은 성경적인가?

 

1. 잠언 26:2  "까닭 없는 저주는 이르지 아니하느니라"

주석학적 배경이 없는 짜맞추기 식의 성경해석은 치명적인 오류를 초래한다. 대부분의 오류는 본문을 그것이 등장하는 문맥과 상관없이 읽고 해석한 데서 발생한다.

"까닭 없는 저주는 이르지 아니하느니라"는 말은 내가 받는 저주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는 뜻이 아니며, 더욱이 조상의 죄 때문에 저주가 일어났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그 성경본문은 "나에게 저주가 이르렀을 때에 그 저주는 반드시 까닭이 있다"는 수동형의 뜻이 아니다.

그 성경본문은 "이유 없이 상대방을 저주하면 안 된다"는 능동형의 뜻인 것이다.

 

[공동번역] 참새가 떠돌듯, 제비가 날아 가듯 까닭 없는 저주는 미치지 않는다.

[표준새번역] 까닭 없는 저주는 아무에게도 미치지 않으니, 이는 마치 참새가 떠도는 것과 같고, 제비가 날아가는 것과 같다.

[현대인의성경] 이유 없는 저주는 날아다니는 참새나 제비처럼 상대방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잠언 26:2은 가정에 닥친 저주나 조상의 죄 때문에 받은 저주의 근거를 제시하는 구절이 아니며, 남을 이유 없이 저주하지 말라는 뜻이다.

 

2. 예레미야 31:29;  에스겔 18:1-32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죄의 유전적인 전승을 주장하기 위해 든 성경 중에 많이 사용되는 것이 위의 두 구절이다.

이윤호목사보다 먼저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산다"는 책을 발행한 메리린 히키는 예레미야 31:29인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는 부분만을 인용하여 "에서가 야곱과 그의 자손들에게 원망과 분노의 쓴 뿌리를 품게 되었을 때, 그의 자녀들과 야곱의 자손들에게 쓴 뿌리를 품게 되었다"는 결론을 이끌어 내었다(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산다 182쪽)

성경은 이렇게 부분적으로만 인용하면 전혀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

 

"그 때에 그들이 다시는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 이가 심 같이 각기 자기 죄악으로만 죽으리라(렘31:29-30)

 

"너희가 이스라엘 땅에 대한 속담에 이르기를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고 함은 어찜이뇨,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너희가 이스라엘 가운데서 다시는 이 속담을 쓰지 못하게 되리라.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겔18:2-4)

 

성경이 말하는 내용은 정반대적인 내용이다. 아들에게 아버지의 죄가 승계되지 않으며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이윤호목사와 메릴린 히키는 성경말씀이 본 뜻과 다른 이스라엘의 속담을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본문의 문맥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아전인수(我田引水) 식의 성경해석의 위험을 보여준 대표적인 예이다.

 

 

"아비는 그 자식들을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라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신24:16)

 

위에 본문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부흥시킬 것을 약속하신 본문이다. 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죄로 인하여 뽑으셨던 것처럼, 이번에는 다시 씨를 뿌려 그들을 세우고 심으실 것이라는 소망을 주는 맥락이다.

 

그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새 언약을 맺으셔서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되며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본문은 그 동안 이스라엘 사이에서 하나님에 대하여 오해하여 자기들이 당하는 환난을 "아비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의 이가 시다"는 속담, 즉 자기들이 고난을 당하는 것이 조상들이 지은 죄 때문이라는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어 그런 속담을 다시는 사용하지 않게 된다는 말씀이다.

 

직접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조상 대대로 쌓여온 죄악 때문에 자기가 불행을 겪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지 않고 모든 책임을 연대적인 책임, 집단적인 책임으로 돌리는 불신앙이다. 지금 유대인들이 이렇게 생각하여 "아들이 이가 시린 것이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기 때문"이라는 속담과 같이 생각하고 있는데 그러한 생각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각 사람은 자기의 죄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짊어지는 일이란 없다.

"범죄하는 영혼"이 그가 지은 죄악으로 죽는 것이다.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 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 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겔18:20)

 

3. 출애굽기 20:4,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20:5-6)

 

이미 앞에서 설명한 바 있으므로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가계저주에 대한 주창자들이 하나같이 가계에 흐르는 저주에 대한 내용이라고 생각하는 성경구절이 이 본문이다. 가계 저주 주창자들은 자신들의 견해를 이 성경구절에 맞춘다.

 

앞에서 설명한 성경 구절에서도 보았듯이 죄에 대한 책임과 의를 행한 공로는 항상 개인이 하나님과 관계한다. 그러면, 출애굽기 20:4, 5에서 말하는 아비의 죄를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한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구절은 반드시 그 앞에 조건으로 달려 있는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라는 말과 연결하여 이해해야 한다. 이 두 문구는 서로 동떨어져 생각할 수가 없는 말들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혐오하시는 십계명의 "우상숭배와 하나님의 형상을 만드는 문제"와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출20:4)

 

즉 윗 말씀은 우상숭배에 대한 경고이며,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강력한 강조의 말씀이 될 것이다. 물론 우상숭배를 하던 자손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계명을 지킨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푼다"는 구절에 대해서는 왜 동일한 방법으로 문자적인 설명을 하지 않는가?

 

계명을 지키는 자의 후손은 하나님을 안 믿어도 천대까지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을까?

다시 말하여 본문은 강조적인 경고의 말씀이라고 볼 수 있다.

"날 때부터 맹인이 된 사람"에 대해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그 사람이 맹인이 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이냐고 물었다. 이들은 사람의 질병이 어떤 직접적인 원인, 특히 죄 때문이라고 생각하였고, 그렇다면 원인이 된 죄의 장본인은 누구냐는 것이 그들의 관심사였다.

당대 랍비들 사이에서는 반드시 죄란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생기는 법이라는 논리에 의거해, 날 때부터 지체 장애아인 경우에는 부모가 죄를 지어 자녀가 질병에 걸렸든지, 또는 아예 태아가 죄를 지어서 그렇다는, 태아가 죄를 지을 수 있다는 논리를 펴는 경우가 있었다

더욱이 예수께서는 이러한 의견을 결정적으로 부인하신다.

 

"제자들이 물어 가로되, 랍비여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요9:2-3)

 

또한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해를 받아 죽음을 당한 갈릴리 사람들과 망대가 무너져 사고로 죽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죄가 많아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다.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 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눅13:1-5)

특별히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저주를 하는 분이 아니라, 은혜를 내리는 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수를 믿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이다. 하나님은 "영의 아버지"(히12:9)이시며, 우리에게 영혼(spirit)을 주시는 분(전12:7, 히12:9, 눅12:20)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에게 저주가 남았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복음(기쁜 소식)이라고 할 수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부족한 것이며, 불완전한 것인가?

은혜와 복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고 저주를 내리는 분도 하나님이다.

가계에 흐르는 저주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저주가 없어지며, 조상들의 죄까지 회개하는 어떤 특별하고 이상한 기도를 하여야만 저주가 없어지는 것이 결코 아님을 왜 모르는가?

 

죄가 유전된다면, 예수 그리스도는 마리아와 그 조상의 죄도 유전 받았어야만 하므로, 그의 무죄성을 증명할 수가 없다.

그분은 참 하나님이시지만, 역시 그분은 참 사람이었기 때문이며, 예수는 신성과 인성을 그대로 보존한 연합된 본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죄가 유전된다면, 의도 유전되어야만 하는데, 조상의 믿음으로 그 후손이 구원을 받을 수는 있다는 것은 비성경적이다.

어느 누구에게나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으며, 어떠한 죄인이라도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기에, 복음은 우리에게 기쁜 소식이 되는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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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내용은 저자의 태도 변화에 관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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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호 목사 “가계저주론 잘못됐다”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이렇게 끊어라』자신의 저서 폐기 처분
 
김철영 icon_mail.gif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이렇게 끊어라』라는 책을 쓰고, 그동안 적극적으로 가계저주론을 가르쳐왔던 이윤호 목사(꿈의축제교회)가 가계저주로는 성경적으로 잘못된 것이라는 내용의 글을 예장합신 교단지 <기독교개혁신보>에 기고했다.

이윤호 목사는 글에서 “가계의 저주에 관심을 갖고 사역을 하게 된 배경, 가계의 저주에 대한 오류와 관련된 본인의 반성과 성서적 비판, 가계의 저주에 관한 회개 및 이에 상응하는 결단”을 소개하면서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이렇게 끊어라』은 폐기 처분하고, 인세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유니세프에 전액 기부했다고 밝혔다.

자신이 그동안의 가르침에 대해 사과를 표명한 이윤호 목사는 가계저주론을 폐기하기로 결심한 데는 합신교단 관계자들의 충고와 권면이 있었다고 밝혔다.
 
다음은 이윤호 목사의 글 전문.

가계의 저주에 대한 반성 및 성서적 비판

지난 1996년부터 2012년까지 한국, 미국, 인도네시아에서 선교사와 목사로 활동하며 ‘기독교 치유상담원’을 설립하고 영성치유 상담 및 훈련 사역을 수행하면서 본의 아니게 교계와 지역교회에 심려를 끼쳐 드림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본인은 이 글을 통해 ‘가계의 저주’와 관련하여 본인의 입장을 세 가지 관점에서 피력하고자 합니다: 1) 가계의 저주에 관심을 갖고 사역을 하게 된 배경; 2) 가계의 저주에 대한 오류와 관련된 본인의 반성과 성서적 비판; 3) 가계의 저주에 관한 회개 및 이에 상응하는 결단.

1. 가계의 저주에 관심을 갖고 사역을 하게 된 배경

본인은 인도네시아 선교사로 일하면서 풀러 선교대학원에서 박사(Ph.D.)과정 중, 논문지도 교수이신 챨스 크래프트 박사로부터 ‘내적치유’ 과목을 수강하게 되었습니다. ‘내적치유’를 심도 있게 공부하면서, 온전한 치유를 위해서는 영혼육의 전인적 치유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후 문제가 많은 내담자들을 상담하면서 한 개인의 많은 문제들이 가계로부터 왔으며, 많은 문제들이 한 가계에서 반복되는 대물림의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와중에서 메릴린 히키의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산다’는 책이 1997년에 베다니 출판사에서 출판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약점은 신학적으로 빈약하고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는’ 구체적인 방법론이 결여된 것입니다. 따라서 베다니 출판사의 요청에 따라 본인은 전술한 메릴린 히키의 책을 보완하기 위해 신학적 작업과 임상적 적용을 위한 구체적 방법론을 담아 1999년에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이렇게 끊어라’는 책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2. 가계의 저주에 대한 오류와 관련된 본인의 반성과 성서적 비판

본인은 ‘가계의 흐르는 저주를 이렇게 끊어라’는 책의 저자로서, 이와 관련된 신학과 사역에 대한 자기반성의 관점에서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네 가지로 비판하고자 합니다.

첫째, ‘가계에 흐르는 저주’라는 표현은 잘못된 것입니다. 따라서 본인은 ‘가계에 흐르는 저주’라는 용어를 잘못 사용하였음을 인정합니다. 이는 우선 성경에는 이런 직접적인 표현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본인은 ‘가계의 저주’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여러 신학자들의 권면을 따라 ‘조상의 죄악이 후손들에게 미치는 부정적 영향’ 혹은 ‘가계에 반복해서 나타나는 죄악된 성향’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이런 용어는 다음과 같은 신구약 성경말씀의 지지를 받기 때문입니다(출 20:5; 욥 21:19; 애 5:7; 렘 32:18; 신 5:9; 민 14:18; 사 65:6-7; 레 26:39; 단 9:16)(민 14:33; 사 14:20-21; 시58:3-5; 시 106:6; 행 7:51-52; 마 23:29-32; 눅 11:48-51; 벧전 1:18; 마 18:25, 눅 23:28; 19:41-44). 

둘째, ‘신자에게 가계에 흐르는 저주가 있다’는 가르침은 잘못된 것입니다. 따라서 본인은 ‘신자에게 가계에 흐르는 저주가 있다’고 잘못 가르쳤음을 인정합니다. 왜냐하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참조 롬 8:34)라는 말씀에서 ‘정죄함’(카타크리마)은 영원한 형벌에 처하는 ‘단죄’(斷罪) 또는 ‘저주’와 같은 의미로 하나님의 결정적인 심판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자들은 비록 범죄할 때 ‘책망’과 ‘징계’는 받지만(히 12:5-8), 결코 ‘정죄함’ 곧 ‘저주’가 없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받을 저주를 십자가에서 다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갈 3:13; 참조 고후 5:14-15,21; 롬 3:25; 벧전 2:24). 또한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요 1:12),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자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롬 8:38-39). 따라서 신자의 신분과 칭의적 관점에서, 본인은 ‘신자들에게 가계에 흐르는 저주는 없다’는 신학을 전적으로 수용합니다. 

셋째, ‘신자에게 가계의 저주가 유전된다’라는 가르침은 잘못된 것입니다. 따라서 본인은 ‘신자에게 가계의 저주가 유전된다’고 잘못 가르쳤음을 인정합니다. 이는 아담의 자손들은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고, 그 ‘원죄’와 자신이 짓는 ‘자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저주는 또한 유전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죄에 대해 하나님께로 직접 임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비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이 죽으리라.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찌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 아비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하리니 의인의 의도 자기에게로 돌아가고 악인의 악도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겔 18:4, 20). “아비는 그 자식들을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비를 인하여 죽임을 당치 않을 것이라 각 사람은 자기 죄에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신 24:16). 따라서 각자 자기의 선택에 의해 복을 받기로 하고 저주를 받기도 하는 것이지만, 저주가 유전되는 것은 아닙니다.

넷째,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이렇게 끊어라’는 책의 내용은 독자들과 세미나 참석자들에게 자신의 죄와 잘못을 조상에게 탓을 돌리는 위험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본인은 이런 가르침을 통해 독자들과 세미나 참석자들에게 한 개인의 모든 불행과 비극적 사건의 원인을 조상에게서 찾거나, ‘가계의 저주’를 통해서 자신의 죄악된 삶을 합리화하는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잘되면 제 탓이고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과 같이, 첫 번째 부작용은 한 개인의 모든 불행과 비극적 사건의 원인을 조상에게서 찾는 것입니다. 즉 자신의 죄나 잘못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를 조상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나아가서 두 번째 부작용은 ‘가계의 저주’를 통해 자신의 습관적 죄악적 삶을 합리화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가계의 저주’가 오용되고 남용될 때, 본인은 자신의 죄에 대한 책임 회피 및 타인에게 책임전가, 죄악된 생활에의 안주, 죄책감 불감증과 회개의 거부 등의 더 큰 후유증을 초래하게 됨을 인정합니다.

3. 가계의 저주에 관한 회개 및 이에 상응하는 결단

본인은 ‘가계에 흐르는 저주’에 대한 교회사적 선행연구가 거의 전무한 상태에서 가계의 대물림의 문제가 심각한 내담자들을 돕기 위한 ‘가계의 저주’를 차단하는 가르침과 사역이 임상적 측면에 지나치게 초점을 둔 나머지 개혁주의 신학적으로, 교리적으로 혹은 용어적으로 오해의 소지를 많이 초래했다는 합신교단 관계자들의 지적을 겸허하게 수용했습니다. 이에 본인은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기 위하여 합신총회 관계자들의 충정어린 충고와 지도를 따라 다음과 같은 과정을 이미 밟았습니다.

첫째, 본인은 문제의 발단이 된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이렇게 끊어라’(1999년 판)는 책을 더 이상 인쇄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베다니 출판사도 이에 동의했으며 출판사가 보유한 모든 책을 이미 폐기하였습니다.

둘째, 본인은 ‘가계에 흐르는 저주’에 관한 본인의 오류를 인정하고 사과하는 내용을 기독교개혁신보 온라인과 오프라인에 공개하는 것에 이의가 없음을 통보하였습니다. 또한 본인은 2012년 7월 1일부로 ‘가계의 저주’에 관한 가르침을 중단하고, 앞으로도 합신 교단 관계자들의 지도편달을 받아 정통신학에 입각한 목회와 치유상담사역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고,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준해 지역교회 목회 및 기독교영성치유상담 사역에 전념하겠다고 기사광고를 기독교개혁신보에 2012년 7월에 이미 게재하였습니다.

셋째, 본인이 시무하는 ‘꿈의축제교회’ 주보(2013년 5월 26일자)에 본인의 사상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는 특별광고를 실었습니다. 더 나아가서 2012년 8월에 본인은 소속교단인 한국기독교침례회(이하 ‘한기침’)의 교단 지도자들의 지도편달을 받아 정통신학에 입각한 목회와 치유상담사역에 전념하겠다는 본인의 결심을 ‘한기침’에 이미 피력하였습니다.

넷째, 본인은 베다니 출판사로부터 받은 ‘가계의 흐르는 저주를 이렇게 끊어라’는 책 인세 모두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및 ‘유니세프’에 이미 기부했습니다.

다시 한 번 본인은 ‘가계의 흐르는 저주를 이렇게 끊어라’는 책을 통해 한국교회에 미친 부정적 영향을 인정하고 사과드립니다. 반면에, 본인은 비판과 정죄보다는 진리와 사랑과 인내로서 본인이 향후에 올바른 목회와 사역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합신 교단 관계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면서 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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